[금요예배] 창세기 45장 1~3절 "창세기 요셉 이야기를 통해 본 유대인 회복 역사"
창세기 45장 1-3절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오늘은 10년 동안 이스라엘 선교사로 헌신한 류모세 선교사가 쓴 “유대인 바로보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창세기 요셉에 대한 메시아닉 쥬의 해석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메시아닉 쥬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요셉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며 성경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누가 가장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창세기 49장 8절에서 10절을 보면 야곱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예언한 유다일 걸로 보입니다. 메시아의 또 다른 모델인 다윗이 유다 지파 출신이고 예수님도 육신의 혈통으로 따진다면 다윗, 즉 유다 지파에서 나셨습니다. 그런데 분명 창세기 요셉도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그림자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메시아의 모델은 유다일까요 요셉일까요?
이것은 유대교 랍비들의 성경 해석에서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 즉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회복, 즉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사건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들은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로, ‘요셉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유대인으로 이해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과 형제들의 감동적인 재회를 예수님과 유대인의 뜨거운 화해로 이해합니다.
이들은 유다와 요셉 모두 메시아를 상징하지만 특별히 요셉 이야기는 요셉을 시기하고 팔아버린 형들과 요셉이 마지막 순간에 화해하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긴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뜨겁게 화해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요셉은 은 20에 팔려갔고 예수님은 은 30에 팔려갔습니다. 요셉과 예수님을 판 핵심 인물의 이름이 모두 ‘유다’입니다. 그리고 요셉도 먼저 형제들에게 배척받은 후 이방 세계인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처럼, 예수님도 먼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받은 후 이방 세계의 메시아가 되었습니다.
또한 요셉 이야기에는 제 3의 인물인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이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각 요셉을 잘 아는 바로와 잘 알지 못하는 바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11, 12절을 보면 요셉을 잘 알고 그 은혜를 기억한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은 요셉과 이집트로 이주해 온 요셉의 형제들을 축복하고 선대해 주었습니다. 한편 출애굽기 1장 8절, 16절을 보면 요셉을 잘 모르는 바로는 요셉 형제들의 후손을 진멸하고 씨를 말리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전 세계를 덮친 기근 중에 세계 최고의 곡창지대인 이집트의 총리로 재직하면서 세상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었지만, 요셉을 모르고 그로부터 받은 은혜를 새까맣게 잊어버린 바로와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멸절하려 했습니다.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이해할 때, 이런 현상은 교회사의 흐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그 은혜를 기억한 세대는 예수님의 친족인 유대 민족을 선대하고 축복한 반면, 예수님의 은혜를 모르는 영적 암흑시대일수록 유대인들을 괴롭힌 반유대주의가 창궐했음을 교회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한 것처럼 이런 반유대적 리더십의 흐름은 아말렉, 하만, 헤롯, 히틀러를 통해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한편 요셉과 형제들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에 요셉은 형들을 즉시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형들이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서, 또 형들이 이집트 총리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해 요셉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요셉이 유대인이 아닌 이집트인, 즉 이방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상도, 헤어스타일도 완벽한 이집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1세기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다 가신 예수님은 분명 ‘유대인 예수’였지만 이 예수님이 4세기 로마로부터 시작해 유럽, 영국, 미국, 한국을 거치면서 완전히 ‘이방인 예수’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 출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유대인 예수가 자란 나사렛에 가면 마리아 수태 기념교회가 있는데 그곳엔 각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성화가 있습니다. 한복을 입은 아기 예수와 기모노를 입은 아기 예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2000년 동안 각 나라 전통과 문화로 덧입혀진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요셉 이야기로 돌아가면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의 드라마를 펼쳤습니다. 이는 요셉 자신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5장 1절에서 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사건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듯이, 예수님도 동족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자신들이 팔아넘긴 요셉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할 말을 잃은 것처럼, 그날에는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2천년 전에 십자가에 찔러 죽인 예수, 그분이 바로 자신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깨닫고 애통하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12장 10절은 이 모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을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셉과 형들 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의 이면에는 이집트인들의 적극적인 ‘중재’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기근으로부터 생명을 건짐 받은 이집트인들은 요셉과 형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중요한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심판에서 건짐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중재를 해야 합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무시무시한 박해를 가해왔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먼저 이집트의 총리로서 이방인들의 경배를 받은 후에 형들의 경배를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먼저 이방인의 왕이 된 후에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신 구속사의 플랜인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유대인 예수를 통해 은혜를 입게 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도 영광스런 사명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의 껄끄러운 관계가 회복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청교도 로버트 레이튼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대인의 회개를 위해 매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의 영광의 주된 부분을 망각한 사람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 민족은 다시 한 번 일어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회개는 이방인들의 풍성함이 될 것이다(롬 11:12).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의 교회가 지금까지 보아 온 그 어떤 때보다 더 영광스런 시대가 열릴 것이다.”
또 다른 청교도인 사무엘 러더퍼드는 다음과 같이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 다음에 나타날 가장 기쁜 광경을 보게 되리라. 우리의 맏형제인 유대인과 그리스도께서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는 그 광경! 그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도다. 이제 다시 만났으니 서로를 아껴 주게 되리라.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아름다운 날이여! 오 아름다운 예수여, 나로 하여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광경을 보게 하소서. 당신과 당신의 옛 백성이 서로 끌어 안은 그 광경을 보게 하소서!”
개인적으로 저는 대한민국의 사명이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회복에 쓰임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우리민족, 대한민국과 가장 닮은 민족이 바로 유대 민족, 현대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모두 작은 나라인데 초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고 수많은 고난과 침략을 받았습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건국일이 유사하고 타력의 힘으로 독립했고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를 두었으며 건국이념이 신본주의이며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건국 후 70년 동안 계속되는 적의 도발에 시달렸습니다. 유대인이었던 12제자, 바울 그리고 유대인 신자들이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았는데 마지막 시대에 한국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주시기 위함이며 지금 전세계에 불고있는 한류바람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세계인이 믿게 하려는 주님의 특별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UBF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세계선교, 특히 전세계 대학생 선교를 위해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의 종착지, 땅끝은 역설적이게도 복음이 출발했던 팔레스타인, 곧 이스라엘 땅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창세기 요셉 이야기에 나오는 은혜를 알고 이스라엘을 선대하고 축복하는 선한 이집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실 때 그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3절 말씀 같이 읽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