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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수양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수양회는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려고 만든 모임이라고 합니다. 3박 4일 동안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수양회 개회 말씀으로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비유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4가지 종류의 땅이 나오는데 여러분 모두 좋은 땅이 되어 수양회 기간 풍성한 결실을 거두시길 기도합니다.

제 1장 귀 있는 자는 들으라
1절에서 9절까지입니다. 8가지 비유의 소나기를 쏟아 부으시던 그 날 예수님께서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덥기도 하고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갈릴리 호수 바람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여러분도 북적거리는 도시, 좁은 집에 있다가 넓고 상쾌한 충주호 근처에 오니 마음이 뻥 뚫리지 않습니까? 수양회 기간만큼은 모든 복잡하고 골치아픈 일들을 잊어버리고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길 기도합니다.

큰 무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예수님은 배에 오르셨습니다. 천국의 여러가지 비밀을 비유를 통해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쇠꼬챙이처럼 내리꽂히는 불볕 화살, 가마솥 같은 여름 한낮에”라는 시구는 쇠꼬챙이, 화살, 가마솥의 이미지를 통해 무더운 한낮의 여름이 우리의 감각에 파고드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천국이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에서 먼저 이루어집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수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장차 천국을 가져다 줄,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씨를 뿌리는데 어디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각기 다릅니다.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싹 한 번 못 틔우고 끝났습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은 틔웠지만 뿌리를 못 만들고 말라버렸습니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잘 자라다가 가시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무럭무럭 자라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9절에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의 씨는 귀를 통해 들음으로 우리 마음에 심겨지기 때문입니다. 외국어나 어려운 전공수업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처음 들을 때 그 뜻을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참 어렵네”, “별 재미가 없네”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외국어나 전공은 좀 못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말씀을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가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름 수양회 내내 여러분은 수많은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나에게 주시는 것으로 영접하고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깨달으시길 기도합니다. 들려지는 말씀에 대해 다음 장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은 자세를 가지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제 2장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0절에서 17절까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은 가만히 앉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나아와 묻고 예수님의 답변을 듣는 자들이 알게 됩니다. 한 번 답을 들은 자들은 계속해서 듣고자 하고 그것이 쌓이면 풍성한 천국의 비밀을 간직한 자가 됩니다. 답을 못 듣고 그 상태가 계속되면 이미 들어서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천국의 비밀마저도 빼앗기게 됩니다. 비유를 들을 때 그 숨겨진 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이 말씀의 의미를 가르쳐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상식과 이해력의 한계에 머무릅니다. 씨는 씨고 밭은 밭이지 하거나 예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해석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셔도 그 분이 예수님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음이 완악해진 백성들의 모습을 미리 보고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읽고 쓰기 위주의 영어공부를 한 학생들이 AFKN 뉴스를 듣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한없이 둔했습니다. 그리고 창고세일, 재고처분 옷들만 주로 본 사람이 명품 브랜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를 보고도 눈 뜬 장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사야는 백성들이 깨닫고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여 그들의 마음을 둔하게, 그들의 귀를 막히게,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귀가 둔해지고 눈은 감겼다고 하십니다. 이사야는 의지 미래형을, 예수님은 현재 완료형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고침받는 역사를 미루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순도 100%의 온전한 회복을 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 백성들은 예수님을 통해 고침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고, 이전에 즐기던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 고침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도 더 이상의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사람은 도둑도, 간음자도, 심지어 살인자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그 분을 영접할 수 없고 그 말씀을 듣고도 돌이킬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손에 자신을 내어맡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무리들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또 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을 보고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눈과 귀가 얼마나 복이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정말로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한 분이 바로 이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그림자, 그 희미한 음성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제자들이 전파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친히 말씀해 주십니다. 이 수양회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나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3장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18절에서 23절까지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발견하고 말씀이 결실을 맺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곧 길 가에 뿌려진 자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말씀이 파고 들어가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도 딱딱한 사람들입니다. 씨처럼 별 볼 일 없는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는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이런 자들의 마음에 악한 자 사탄이 얼씨구나 달려들어 말씀을 그 흔적까지도 지워버립니다. 그 대신 교만, 불신, 미움, 시기, 원망, 절망 등의 씨앗을 마구 마구 뿌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교만하고 불신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절망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악하고 음란한 생각과 계획이 샘솟듯이 솟아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아! 내가 이런데 나는 가망이 없구나' 속으로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은 심령에 악한 자 사탄은 더 이상 찾아올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길 가와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인터넷, TV, 스마트폰 심지어는 책도 말씀을 깨닫기까지 보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만약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늘 악한 자의 지배를 받고 악한 자가 심어 놓은 악하고 추한 열매를 잔뜩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 수양회도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돈이 아깝다, 피곤한데 집에서 쉴 걸 그랬다, 와이파이도 안 터지고 짜증난다, 괜찮은 이성이 눈에 띄면 말이나 걸어볼까 등등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생각만 하다가 끝나고 말 것입니다.

둘째,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는 자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하는 바를 즉각 알아차립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말씀을 듣고 ‘오! 이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어’하며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말씀을 듣고 ‘오! 인간의 죄가 너무 심각해’하며 심각해합니다. 그 다음 말씀부터는 각자 추측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양회에 이런 분들이 많으면 아멘 소리도 엄청 크게 나오고 오히려 메신저들이 더 큰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돌밭에 말씀이 뿌리내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뿌리는 식물을 지탱해 주고 흙에서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이는 정말 중요한 기관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돌밭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부분만 관심을 가지고,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누구보다 은혜가 넘치는데 혼자 있을 때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전혀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지적대로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목자님들에게, 사모님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소감도 쓰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합니다. 정작 자기 마음의 커다란 돌을 깨뜨려 달라고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말씀이 위대한 것은 사람의 어떤 죄나 상처, 고질병까지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돌밭과 같은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피상적인 은혜만을 얘기할 뿐 내 마음의 고통과 눈물과 상처와 죄를 어루만지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그 곳까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돌밭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 사랑이 넘치는 모임, 좋은 직장, 사랑스러운 동역자, 즐거운 취미 생활과 함께 “왓 어 완더풀 월드”하며 기쁨이 넘칩니다. 하지만 말씀 때문에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부딪히고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을 축복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오면 금방 넘어져 버립니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기도 하고 교회는 다니지만 말라 비틀어져 자기 하나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돌밭에게서 가장 흔히 듣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 등입니다. 제가 또 이렇게 얘기하면 '아! 내가 또 이런데 나는 가망이 없구나' 속으로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돌밭들은 흙속에 감추려는 자신의 돌을 말씀 앞에서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매이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불행했던 과거와 부끄러운 죄악을 들고 나갈 때 예수님은 이를 깨뜨리시고 세상의 어떤 환난과 박해도 어찌할 수 없는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 속에 나를 뿌리내리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 하반절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제 생각엔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만큼 우리를 예수님께 굳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 수양회가 예수님의 죄사함의 은혜가 차고 넘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예수님께 깊이 뿌리내리시길 기도합니다.

셋째,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가시떨기만 없으면 좋은 땅과 거의 비슷합니다. 길가 밭처럼 마음이 딱딱하지도 않고 돌밭처럼 마음에 감추고 있는 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잘 묵상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합니다. 소감도 깊이 있게 쓰고 말씀의 원리대로 인간관계도 잘 맺고 맡겨진 일도 규모있게 잘 처리합니다. 뭐 나무랄 것이 없는 신앙생활을 영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시떨기 밭에는 가시도 함께 자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시를 22절에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고 하십니다. 먼저, 염려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하는 것으로 요즘은 청년실업, 암, 영어실력, 노후대비, 북한의 전쟁도발, 방사능 유출 등이 많이 염려가 됩니다. 조금 스케일이 큰 사람은 신세계질서, 달러붕괴, 베리칩 등을 염려할지 모릅니다. 수양회에 와서는 가스는 잠그고 나왔는지, 애들한테는 별 일이 없는지, 내가 없는데 회사일은 잘 돌아가는지, 잘 때 모기가 많지는 않은지, 나하고 잘 안 맞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지는 않을지 등을 염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염려가 있으면 말씀으로 가야 할 에너지와 시간이 염려하는데 다 새어나갑니다. 말씀이 잘 심겨져서 싹을 내고 뿌리를 내렸는데 염려 때문에 말씀이 더 이상 그 내면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한편 재물의 유혹은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더 좋은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핸드백, 지갑, 구두 등을 갖고 싶습니다. 아반떼 대신 에쿠스를, 다세대 주택 대신 고급 아파트를, 믿음만 좋은 배우자보다는 이왕이면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받쳐주고 돈도 잘 벌고 성격도 착하고 애기도 잘 놓는 배우자를 갖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의 욕심 또한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멸시하게 만듭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을 보면 무시하게 됩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하나님 앞에 살지 못해도 돈 많이 벌고 세상에서 성공하면 그 사람처럼 되고 싶습니다. 가시떨기 밭은 은혜를 아는 것 같지만 실상 그 마음에 염려와 욕심이 자리잡고 있어 그 말에 뭔가 힘이 빠지고, 뭔가 순수하지 못한 냄새를 풍깁니다. 그 행동은 예수님을 위해 100% 자신을 희생하지 못하고 주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늘 아쉬움이 남고 늘 주님께 죄송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족집게네! 내가 정말 그런데 나는 정말 가망이 없구나' 속으로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그 정도로 강하고 끈질긴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냥 놔두면 말씀은 내 마음에서 결코 열매맺지 못할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욕심낸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의 것을 더 가질 수도 절대 없습니다. 수양회 기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욕심을 내려놓고 말씀 자체에 온 마음을 쏟는 가운데 한 마디 말씀이라도 은혜의 열매를 맺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넷째,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길 가, 돌밭 , 가시떨기과 다르게 좋은 땅은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깨닫습니다. 저는 ‘깨닫는다’는 의미를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 말씀에 자신을 맞추어 말씀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 앞에 자신의 완악함과 숨기고 싶은 돌과 어느덧 자라난 가시를 들고 나아가 부드럽고 감출 것 없고 깨끗한 마음이 될 때까지 줄기차게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가장 더러운 존재가 눈보다도 희어지고,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드리게 되고, 한없이 연약한 인간이 사탄을 쳐부수는 믿음의 용사가 되는 기적과도 같은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은 죄많고 연약한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을 통해 친히 이루어내시는 열매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약한 것을 도리어 자랑하고자 했던 사도 바울이 깨달은 천국의 비밀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벌레같고 짐승같은 자신에게도 찾아오시고 그 맑고 귀한 보배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내 마음에 살아 계시고 나를 통해 빛과 생명과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지 이것이 진정한 말씀의 씨가 내 마음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모습입니다. 수양회 기간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실상을 발견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뭔가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말씀에 관심이 없는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을 인정하고 영적인 세계를 보여 달라고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신앙생활 하느라 자신의 상처와 수치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돌밭이라면 어떤 흉악한 죄도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 앞에 벌거벗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면서도 마음에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함께 키워가는 가시떨기라면 세상을 버리고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리할 때 영원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모든 천국의 열매들을 이 땅에서도 맺게 하실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하게 하시고 고난 중에도 기뻐하게 하시고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차고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게 아니하시고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모든 영적, 물질적인 축복을 상상 이상으로 가득 부어 주실 것입니다.

수양회를 시작하는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마음에 말씀을 깨닫기 원하는 소원을 부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말씀 속에 담긴 깊은 영적인 비밀과 진리들을 많이 발견하는 수양회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말씀으로 치유받고 회복되는 체험을 하게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앞으로 저보다 훨씬 훌륭한 일곱 분의 강사들이 온 마음으로 준비한 말씀의 씨가 여러분의 마음 밭에 뿌려질 것입니다. 메인요리만 있으면 섭섭해 하실 까봐 라이프, 찬양, 특강, 성경공부 등 다양한 특식도 준비했습니다. 부디 간절한 소원과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셔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여러분의 마음에 뿌려지는 이 말씀들이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