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며칠 전 금요예배 소감을 들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부르시고 인도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이뤄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수양회 연극에서 저는 캠퍼스 폴리스를 맡았습니다. 이십대 때 아파트 경비셨던 아버지가 부끄러워 ‘아버지 뭐하시노’ 물으면 ‘집에서 쉰다'며 아버지의 직업을 부인했습니다. 부인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펼친 5초 간의 연기가 소품팀의 의상과 어우러져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나 무언가를 부인하거나 시인합니다. 저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부인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께 죄송하고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부인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 앞에서건 주님을 시인하여 장차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나를 시인해주시길 기도합니다.

1. 열두 제자(1-15)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병들고 귀신들린 양들을 고치고 회복시킬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이 역사에 필요한 권능을 열둘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은 1960년대 정치적인 혼란과 불확실한 장래로 방황하는 한국 대학생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을 부르시고 지성인들을 섬길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후 수많은 UBF 목자들을 부르시고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로 양성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각 시대마다 당신의 제자를 부르시고 당신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주님이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에도 방황하는 양들을 먹일 목자를 부르시고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2절에서 마태는 열두 제자를 둘씩 둘씩 짝지어 소개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였습니다. 형제는 평소엔 티격태격 하다가도 위기 때 목숨 걸고 함께 싸워줍니다. 빌립과 바돌로매는 전도하고 전도받은 관계라 서로 믿어주고 존중했을 것입니다. 도마와 마태는 각각 눈에 보이는 증거와 역사적 증거를 중시하여 서로 윈-윈 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다대오는 둘 다 조용히 충성하며 역사를 섬겼을 것이고 시몬과 유다는 정치적인 열심을 양들에게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복음역사는 혼자 섬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도 때론 같은 기질끼리, 때론 서로 보완하도록 짝지어 주십니다. 앞장서 이끌면 묵묵히 따르고, 앞에서 전도하면 뒤에서 기도합니다. 주님이 누굴 붙여주시든 함께 동역하며 복음의 진보를 이뤄나가길 기도합니다.

5절에서 주님은 이 열둘을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장차 전세계를 먹일 사도들이지만 먼저는 이스라엘에게 보내십니다. 그들은 동족에게 먼저 천국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유대 땅의 병든 자, 죽은 자, 나병환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도왔습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잃어버린 한 양을 찾도록 찾아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 학교와 동아리에서 부지런히 잃은 자를 찾고 그를 말씀과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내 주변에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딴 사람이 돕겠지 하지 말고 ‘주님이 나를 그에게 보내셨구나'하고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그를 감당할 시간과 물질,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8절에서 주님은 역사가 일어난다고 사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복음과 능력을 주님께 거저 받았습니다. 좀 된다고 마치 내 능력인 것처럼 착각해선 안됩니다. 내가 도왔다고 인정과 존경을 구해서도 안됩니다. 특정 사람 때문에 복음역사가 흥하거나 망할 것처럼 생각해도 안됩니다. 그저 무익한 종처럼 섬긴 것에 만족하고 일체의 결과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상은 마지막 날 주님께 받습니다. 그저 주님께 거저 받은 것을 양들에게 거저 베풀면 됩니다.

9절, 10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숙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창세기 1장 최초의 인류에게 채소와 나무를 먹을 거리로 주신 분께서 이 새로운 인류의 먹거리도 공급해 주십니다. 선교사님 간증엔 물질자립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3년이지만 러시아 선교사 시절 최저가 월세집부터 고수익 일자리까지 주님이 공급하셨습니다. 복음의 일꾼이 되면 나의 필요를 섬세하게 채우시는 주님을 만나고 믿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제가 지난 5년간 전도모임을 섬겼을 때 주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직장에서 최우수 사원상을 받고 개인사업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모두가 복음역사를 섬기며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하신 주님의 공급하심을 깊이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14, 15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죄와 죽음을 몰아내고 주님의 빛과 생명을 전달합니다. 이런 제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고 주님 대신 사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안을 빌며 양들에게 겸손하고 간절하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곳에 평안이 머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거부한 곳에 심판이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람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선포해야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신있게 선포하길 기도합니다.

2. 박해(16-23)
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동족 이스라엘은 이리 떼 같습니다. 양을 찢어발기는 이리떼처럼 그들은 제자들을 재판에 넘기고 채찍질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마냥 순진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착하면 안됩니다. 사람과 상황을 뱀처럼 재빠르게 판단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께 대한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박해를 당연하게 여기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과격 정통파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동족 유대인 집 앞에 폭탄을 숨긴 선물을 갖다 놓습니다. 북한과 이란에선 성경을 소지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수용소로 끌려 갑니다. 중국에선 예수, 하나님, 아멘이 들어간 게시글이 강제 삭제됩니다. 사탄은 자기 왕국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못 견뎌하며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일련의 박해 가운데 성령의 증거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게 하십니다. 유대교의 초대교회 박해로 지중해 전역에 교회가 세워졌고 카톨릭의 청교도 박해로 신대륙에 기독교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대한민국도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교회 부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현재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 수천만 명의 지하교회 성도가 있고 이슬람 국가 이란에 수백만 명의 크리스찬이 있습니다. 우리가 박해의 때에라도 복음이 더욱 전파됨을 믿고 염려하지 말고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증거하길 기도합니다.

21절, 22절은 더욱 힘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부모형제가 박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UBF에서도 자식이 예수 믿는다고 칼 들고 센터로 찾아오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약점이 가족임을 알고 불신 가족을 부추겨 믿는 제자를 핍박합니다. 주님 역사를 열심히 섬기는데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가족을 보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제자는 주님 때문에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치 독일 하의 유대인처럼 온 사회가 주님의 제자들을 없애려는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우리 세대에 올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박해의 시대가 오면 전도도 어렵습니다. 그때엔 지하로 숨어 들어가 끝까지 견디며 자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박해를 피해 뿔뿔히 흩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박해를 당하더라도 곧 오리라 약속하신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이 끝까지 견딘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저희 모두가 극심한 박해의 때에도 자기의 믿음을 지키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길 기도합니다.

3. 두려워 말라(24-31)
24절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세상은 주님을 미워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 불렀습니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지 않는 세상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적대적입니다. 오늘날은 진화론, 무신론, 유물론, 선택적 성정체성 등 갖가지 거짓 이론과 사상으로 성경의 진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포장해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 죄의식과 수치심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 속에 온갖 더러운 것, 악독한 것을 감추고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불신 세상이 거짓과 폭력, 비방과 조롱으로 믿는 자를 흔들지만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언제든지 떳떳하고 당당하게 성경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구세주의 보배피로 자기 죄를 사함받고 진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듣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은밀히 들은 것, 속삭이듯 깨달은 것도 대명천지에 공중파로 전파하기 원하십니다. 수많은 이란의 지하성도들이 망명한 이란의 목사들이 키프러스에서 쏜 기독교 전파를 통해 복음을 영접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안암 UBF 홈페이지,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많은 온라인 양들이 들며 날며 꼴을 얻는 영적 초장을 가꾸어나가길 기도합니다. 오프라인 양들이 잘 안 모이면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도 지혜인 것 같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육체만 해할 수 있는 권세자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의 몸과 영혼까지 지옥에 던져 넣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과 상황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더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를 잘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 참새 한 마리까지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권세자도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시면 끽 소리 못하고 죽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절대 사람을 두려워해선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복음을 간직하고 전파하는 제자가 세상에서 가장 귀합니다. 90년대 UBF 선교보고 때 한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눈이 고위 정치지도자나 기업가가 아니라 선교사를 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 구소련과 수교도 하기 전에 UBF 선교사가 먼저 그곳에 들어간 것을 아십니까? 정치학을 전공한 저는 그때 믿음이 현실정치를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어떤 홍해도 가르는 능력임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 축복의 대상입니다. 제가 전도자의 삶을 결단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니 무슨 일이든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어떤 두려움도 물리치고 믿음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4. 나를 시인하라(32-42)
32,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가 시인해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에 검을 주러 오신 분, 가족 간의 불화를 일으키시고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고 자기 목숨까지 주님을 위해 바칠 자를 제자로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4장 33절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제자가 참으로 적은 것은 제자가 치뤄야 할 댓가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과 맞서며 가족도 버리고 자기 생명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님이라도 이렇게까지 내게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요? 너무한다고 말하기 전에 주님이 내게 하신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아시고도 나를 당신의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내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나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내게 당신의 비밀을 알려주시며 나를 당신의 역사에 동역자로 초대하십니다. 이 주님을 알면 알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목숨도 이 주님을 위해 바치고 싶어집니다. 내 생명까지 바칠 가치가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 과연 누가 있을까요? 주님은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제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이제 이 주님을 어떤 사람 앞에서도 시인하고픈 마음이 좀 생기십니까?

40절을 보십시오. 이토록 귀한 주님의 제자를 영접하는 자를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주님은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거라고 자신과 지극히 작은 자를 동일시하셨습니다. 주님 때문에 박해받는 신자들은 주님께서 자신과 동일시하는 작은 자들입니다. 특히 감옥 같은 저 북녘 땅에서 숨죽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지하교회 성도들을 주님은 마음아파 하시며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는 북한 동포들을 속히 해방시켜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을 저 감옥에서 탈출시키고 저 귀신들린 우상숭배 체제가 속히 무너지는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혹 주님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북한에 갈꼬?’ 물으신다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답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UBF에서 준비된 북한 선교사들이 쏟아져 나와 북한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데 귀하게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과의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주님 반 세상 반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해온 것을 회개합니다. 지난 몇 년 간 실버선교사로 나가려면 물질을 마련해야 한다며 매일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하며 퇴사 후 월 500 현금흐름 만들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는 특별히 맡은 것도 없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런데 소감을 쓰다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게으른 죄인지 깨달았습니다. 중보기도를 드리며 주님께서 한 영혼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저 한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셨는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주님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하고 제 목숨까지 바쳐 사랑할 분임을 고백했습니다. 수양회 때 5초 컷이라고 연극 연습에 잘 나가지 않은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무슨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주님 앞에서 먼저 기도하고 섬기겠습니다. 제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가운데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제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인생은 주님 앞에서 결산합니다. 사람 앞에 주님을 시인하느냐 부인하느냐가 주님의 결산 평가 기준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부터 주님을 시인하면 큰 일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더 사랑하면 매사에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