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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태복음 15장 34-38절
요절: 마태복음 15장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지난 수, 목 천안에서 전국 학사수양회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가산이라 가까운 광명에서 KTX를 탈려고 역에서 입석을 사려는데 입석도 매진이었습니다. 그냥 타고 걸리면 벌금을 낼까 하다가 수동휠체어 석을 끊고 편하게 앉아서 갔는데 다행히 승무원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힘들게 참석한 수양회라 은혜가 더욱 컸습니다. 분반공부 때 종로, 광주, 관악센터 목자님들과 안암골 전도역사를 나누었는데 다들 전도를 재결단하는 소감을 발표하여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반 후에 여름수양회가 있는데 우리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뚫고나갈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셔서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저의 금요예배 메시지에선 내게 있는 것, 아픈 것, 부담스러운 것, 설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임을 나누었습니다. 요즘 퇴사 후의 물질 자립에 관심이 많은데 주님이 제게 주신 능력과 기질을 잘 사용하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메시지는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 머리에서 나온 건 아니고 저번 메시지처럼 강문호 목사님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였음을 미리 밟힙니다. 겸손하면 내 것이나 남의 것이나 은혜가 됩니다. 성경의 은혜의 세계는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입니다.

먼저, 오병이어는 초림예수, 칠병이어는 재림예수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5’라는 숫자는 고통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요셉의 총리 시절 풍년은 2년, 흉년은 5년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물맷돌은 다섯 개였습니다. 예수님이 들르셨던 병자들이 가득했던 솔로몬 행각의 기둥 숫자도 다섯 개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들도 다섯이었습니다. 반면 ‘7’은 완성과 연결됩니다. 엿새 동안의 천지창조 후 일곱째 날 안식하셨고 인류 역사가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요한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7년 대환난 등 숫자 7로 가득합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12제자를 상징하는 열두 바구니를 거두셨는데 칠병이어 때는 일곱 광주리를 거두셨습니다.

한편 오병이어의 떡은 보리떡으로 가장 하급의 떡이고 칠병이어의 떡은 보통 떡, 보기 좋은 떡입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배경은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 봄 시즌으로 잔디가 깔려 있었고 칠병이어는 심판을 상징하는 초막절 가을 시즌으로 맨 땅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예수님, 초림 예수는 연약한 아기로 오셔서 낮고 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끔찍한 고통을 받으시고 버림받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은 초림 예수님을 만나고 이해하는 계기입니다. 인생의 여러 고난들을 초림 예수를 만나는 기회로 잘 활용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칠병이어 예수님, 재림 예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만왕의 왕, 만유의 주이시며 모든 악을 심판하러 이 땅에 다시오실 심판장이십니다. 성경엔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를 첫번째 것은 깨어지고 두번째 것은 온전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그물은 누가복음 5장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찢어졌지만 요한복음 21장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찢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출애굽 광야 시절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셨을 때 처음 출애굽기 17장 르비딤 반석은 깨뜨리셨지만 민수기 20장 가데스 바네아 반석은 명령하심으로 물을 내게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가 과거의 경험으로 반석을 지팡이로 쳤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 놓은 돌들도 처음엔 깨뜨려 다듬었지만 두번째는 다시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가 사용했습니다.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신자의 삶도 고통이 많습니다. 저희 모임도 자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모토를 갖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전하며 양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이런 저런 고난을 감당할 때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시고 더 이상 애통함이 없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한편 오병이어는 율법, 칠병이어는 복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때 남은 떡은 바구니에 담았고 칠병이어 때는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바구니는 입구가 좁아 안에 있는 것을 건들지 못하고 누가 꺼내줘야 했습니다. 광주리는 입구가 넓어 누구나 꺼내갈 수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바구니는 갈대로 만들었는데 율법을 선포한 모세의 갈대상자가 생각나고 광주리는 종려나무 가지로 만들었는데 복음을 전파한 바울이 성벽을 타고 내려온 광주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오병이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오십 명씩, 백 명씩 앉힌 다음에 떡을 나눠 주셨습니다. 구분짓고 재단하는 율법적인 특징입니다. 반면 칠병이어 때는 구분없이 앉혀 놓고 한꺼번에 나눠 주셨습니다. 가리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복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율법과 복음의 특징을 좀더 생각해 보면 율법은 정죄하고 복은은 용서하며 율법은 지키는 것이고 복음은 퍼뜨리는 것이며 율법은 안 지키면 죽고 복음은 안 전하면 화가 있습니다. 율법에 머물면 저주를 받고 복음에 머물면 은혜를 받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구절은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고 신약의 마지막 구절은 은혜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끝은 복음이고 복음의 끝은 율법입니다. 진정한 율법인은 복음인이 되고 진정한 복음인은 율법인이 됩니다. 율법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복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성경의 진수입니다.

초림 예수도 재림 예수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각기 다른 모습일 뿐 그분의 인격과 성품은 동일하십니다. 첫째,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모두 예수님은 있는 것으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모세가 가진 지팡이로 14번의 기적을 보이셨고 엘리사 때 과부가 가진 기름으로 모든 빚을 갚게 하셨습니다. 금요예배 우리에게 있는 소감으로 은혜와 기적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다들 각자의 소감을 경청하며 각 발표자의 인생에 은혜와 기적을 이루어주시길 서로 기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둘째,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모두 예수님은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부스러기 같은 자도 버리지 않고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목소리가 좋고 문체가 아름다운 소감만 취하지 않고 때로 심히 내용이 짧고 다소 횡설수설하는 소감도 주님의 은혜로 채워지길 기도하며 경청하면 좋겠습니다. 혹 내 은혜가 바닥나서 그런 소감을 발표할 때 형제자매들이 경청하며 들어줄 것입니다. 끝으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모두 예수님은 포기치 아니하시고 광야에서도 사람들을 먹이십니다. 이 예수님처럼 우리가 포기치 아니하고 계속 전도하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할 때 영적으로 광야같이 척박한 이 시대에도 오병이와와 칠병이어의 기적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특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소감을 쓰다 보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은혜가 여러분들 심령에 차고 넘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보리떡 같은 소감이 아름답고 먹기 좋은 떡으로 변화될 날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열심히 소감을 감당하시길 기도합니다. 소감을 잘 쓰게 되면 여러분의 분별력과 판단력도 뛰어나게 되어 세상에서도 어디 가나 머리가 되고 능력있는 자가 되는 은혜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요절 말씀 읽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