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말씀: 잠언 8장
요절: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에서 지혜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철학적인 관념이 아닌 살아있는 인격체로 묘사됩니다. 먼저 지혜가 길 가 높은 곳, 네거리, 성문 곁, 문 어귀, 여러 출입문에서 소리높여 사람들을 부릅니다. 요한복음 1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음녀는 자기 일을 감추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이제 지혜는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소리높여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이 지혜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을 책망하기 때문에 자주 미움을 받습니다. 마치 요셉의 형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일러바치는 요셉을 미워한 것과 같습니다. 또 지혜는 가장 선한 것을 말하고 정직과 진리를 말하며 악을 미워하기 때문에 악인과 거짓말장이들, 위선자들은 이 지혜를 미워합니다. 마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힘을 합쳐 예수님을 죽이려한 것과 같습니다. 지혜의 말에는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어서 왜곡된 자, 반역하는 자들이 이 지혜를 몹시도 싫어합니다. 이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만과 거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합니다. 지혜는 결코 악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과 이 세상 지도자들은 자신의 악함을 밝혀내고 거짓을 드러내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에서 미움받을 것을 각오하고 악을 미워하고 거짓을 멀리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편 이 지혜는 또한 계략과 참 지식, 능력이 있어 왕들과 방백들, 재상과 재판관들이 통치하고 공의를 세우며 다스리는 원천이 됩니다. 이 지혜는 은과 정금, 진주보다 좋습니다. 이 지혜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명철과 지식, 근신이 이 지혜를 따라 다닙니다. 이 지혜 위에 세워지지 않고 이 지혜를 거스르는 왕국과 나라들은 결국 쇠퇴하고 망하게 됩니다. 돈이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지혜가 그 일을 합니다. 새 왕조가 일어나고 새 정권이 들어설 때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부분적이나마 그리스도의 지혜를 본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일생을 다룬 ‘대망'이라는 소설에서 도쿠가와가 자기 아들에게 장군이 되려면 가장 늦게 밥을 먹고 가장 빨리 일어나서 부하들을 챙겨야 한다고 말해주는 대목에서 ‘이야 이건 거의 섬김의 종 예수님인데!’하며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로마가 성적, 도덕적 타락 때문에 멸망했음을 읽고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면 개인이건 나라건 곧 끝이 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누가 이 지혜의 사랑을 입고 이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지혜를 사랑하고 간절히 찾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는 당신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계명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그것을 지키려 할 때 주님께서 이런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UBF에 다니면서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 하지 않았을 때 주님이 잘 다가오지 않고 신앙생활이 허공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을 붙들고 음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을 때 주님의 사랑이 확 다가오고 주님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 “비난하지 말라"는 말씀을 붙들고 투쟁하니 비난하려 할 때마다 늘 주님이 ‘그만해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말씀을 통해 저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빈궁하고 곤핍해지는 지름길임을 뼈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여 년 넘게 매일 양식을 쓰고 매주 소감을 쓰며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자유롭고 능력있는 삶을 사는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부귀, 재물, 공의, 열매, 소득도 다 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21절 말씀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재물을 얻고 그 곳간에 채웁니다. 돈을 쫓아가야 돈을 얻을 것 같지만 성경은 주님을 사랑하면 재물을 얻고 그 곳간에 채운다고 합니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도 속이고 부당한 이익을 취해야 할 것 같지만 주님의 정의와 공의 가운데 다니다 보면 주님께서 친히 재물도 주시고 곳간에 유지시켜 주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세상에서 더 뒤처지고 망할 줄로 알았는데 도리어 재물을 얻고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아도 주님께서 친히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저를 높여 주셨습니다. 제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세상 지혜를 좇았을 때 주님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저를 낮추시고 빈곤하게 하셨지만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 앞에 살고자 하였을 때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22절에서 31절은 지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 전부터 계신 창조주이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만물을 만드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기뻐하셨습니다. 30절, 31절에는 창조의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4번이나 반복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창조한 세계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밝히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기뻐하고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기뻐해야 합니다. 잠간 고난받으신 주님은 슬픔의 사람이셨지만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신 주님은 한없는 기쁨의 원천이십니다. 우리가 때로 현실의 고난에 슬퍼할 수 있지만 본래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인간을 기뻐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32절에서 36절은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인생들을 초청하는 내용입니다. 주님께 듣고 주님의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세상 이념과 사상은 결국 추악한 죄와 사망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얻으면 생명을 얻고 주님을 잃으면 자기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점점 생명과 기쁨, 축복과 번영으로 나아갑니다. 물질적인 부요가 없어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 부요와 주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주님의 계명을 버리고 주님과 멀어지면 결국 그 영혼이 파괴되고 사망이 그를 삼킬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복되고 아름다움을 우리 마음판에 새기고 일대일 말씀공부, 일용할 양식, 금요예배, 주일예배 뿐만 아니라 성경통독, 성경다독에도 도전하여 말씀이 우리 안에 힘을 얻어 다들 말씀의 사람, 성경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내게 주시는 한 마디 말씀에 순종하고자 몸부림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죄를 감추지 않고 주님 앞에 드러내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주님께서 내게 더 가까이 오시고 나를 인격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친히 만나주실 것입니다. 17절 말씀 읽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