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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예수님은 자주 어부 출신 제자들과 배를 타고 이동하셨다. 갈릴리 바다라고 불리는 드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여행 곧 떠남은 항상 설렘과 기대를 동반한다. 동행에 따라 그런 감정은 극도로 증폭되는데 하물며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니! 40대 중반에 업종과 품목을 바꾼 해외영업을 하고 있는 자신이 전혀 다른 동네로 건너 가기 위해 노를 젓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이곳으로 끌고 온 동료와 함께 일하는 후임이 있지만 중요한 결정과 실적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의 명령으로 떠난 여행은 주님의 결정에 따르고 그 책임도 주님이 져주시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고 싶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본다.

 

23절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가자'고 하신 예수님이 피곤을 못이겨 곤히 잠이 드셨다. 제자들도 익히 아는 뱃길이고 목적지도 이미 정해져서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며 노를 젓는다.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일이 잘 풀리고 성과가 저절로 나오면 굳이 예수님이 없어도 될 것 같다. 아쉽게도 내 인생에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참 피곤하고 초라한 인생 여정이지만 그래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갈망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제자들이 몰던 배도 광풍이 호수에 내리쳐 물이 차고 곧 침몰할 것처럼 위태로웠다. 돌이켜 보면 침몰 직전의 배처럼 위험한 순간들이었다. 빈곤, 소외, 고독, 중독, 일탈, 자학 속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대학 친구들이 지금의 날 보고 '훨씬 잘 풀렸어야 하는 사람인데'고 했다. 두뇌도, 언어도, 행동도 느리거나 모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에 가로막힌 듯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게 서글프다.

 

24절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죽게 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다. 깨어나신 예수님은 즉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다. 놀랍게도 그렇게 날뛰던 광풍이 이내 그쳐 잔잔해졌다. 인생의 고비에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도우셨다. 왜 더 기도하지 못했을까, 왜 더 매달리지 못했을까 후회할 정도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꼬인 실타래를 때론 단번에, 때론 하나씩 풀어주셨다. 예수님은 자연현상 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찾아오셔서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해결 못 할 광풍을 그저 잔잔하게 해주신다. 단, 구하지 않는 자에겐 주무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기도가 절로 나오는 건 얄팍한 계산일까, 일말의 믿음일까?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25절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여 순종하는가 하더라

 

예수님은 광풍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제자들의 믿음 없음만 지적하신다. 성경을 읽다보면 늘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에 가장 관심을 가지신다. 아무리 거센 광풍도 한순간이다. 일이 잘 풀려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은 '믿음'이다.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도 결국 '믿음'이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고달픈 인생길이지만 그리 상관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고 수고한만큼 거두리라. 무엇을 하든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실력도, 능력도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도 주님이 명령하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