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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7월의 결심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엔딩이 가깝다. 기존 파트너와의 갈등 속에서 '스스로 개척하라'는 방향을 잡았다. 열심히 찾다 보면 하나는 건지겠지 싶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일에 에너지는 쏟지 말아야겠다. 주님과 복음전도라는 일생일대의 주제가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하니까.

14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바울은 바나바,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거기서 바울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유력한 자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제시했다. 공적으로 회중을 모아놓고 하게 되면 단편만 보고 여러 말들이 나올 것을 염려했다.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도 거짓 형제들이 가만히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울 일행이 가진 자유를 엿보고 그들을 종삼고자 했다. 할례를 무기로 율법의 종으로 유인한 것을 알고 바울은 헬라인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잘보이려면 할례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러다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가 할례로 훼손당할 수도 있었다.

바울은 그런 거짓 형제들에게 한시도 복종하지 않았다. 그는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을 확신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야고보, 게바, 요한에게도 바울에게 임한 은혜를 알게 하셔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다. 다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는데 이는 바울도 원래부터 힘써 행하여 온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바울 일행 사이에 복음에 대한 아무런 이견도 없었다. 진실하게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 간에는 자연스러운 일치와 연합이 생기게 되어 있다.

한편 거짓 형제들을 분별해야 한다. 복음 자체에 관심이 없고 복음으로 자유함을 얻은 것을 시기하고 그 자유를 빼앗으려는 악한 무리들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거짓 형제들을 너무 많이 용납한 것처럼 보인다. 북한 문제, 성소수자 문제, 종교통합 문제 등 이런 얘길 교회에서 하려고 하면 '머리 아프다', '왜 은혜 받으러 온 자리에 정치 얘기를 하는가' 등으로 입을 막는다. 온라인 상의 자유가 있으니 아직은 괜찮다. 복음 진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